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노래방이 언제 처음 생겼는지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는다. 내가 열두 살 때였나, 그러니까 벌써 그게 17년 전이네. 그때 부모님과 함께 갔던 노래방은 코인을 넣어야 노래가 나왔다. 한 곡에 500원. 지금처럼 1절만 부르고 바로바로 다음 곡으로 넘긴다고 생각하면 정말 큰돈이지만 그 땐 내돈 나가는 게 아니니 마냥 좋다고 놀았었지. 그건 그렇고 아직도 우리 아빠의 구성진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. “사랑만은 않겠어요~♬”

17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 없이 노래방은 인기있는 공간이다. 술 한 잔 걸친 사람들이 2차를 가기 전 잠시 쉬는 타임으로 노래방을 찾기도 하고, 눈치 보지 않고 담배 피고 싶은 고등학생들이 찾기도 하고 그저 노래가 부르고 싶어서 찾기도 한다. 두 평 남짓한 사각형 공간에 테이블 하나 소파 두 개. 환풍기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건지 의심스러운 작은 방 안에서 한겨울에도 담배 연기 때문에 선풍기를 돌려가며 연신 번호를 찍어댄다. 노래를 잘하든 못하든 마이크에 에코가 얼마나 들어갔는지에 따라 오늘의 가수가 결정되는 우리들의 즐거운 놀이공간. 최신 가요를 몰라도 괜찮아요. 어차피 20분도 안 돼 모두가 첫 페이지를 펼칠 테니까. 흥에 겨운 사람들이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고 카스나 하이트 짭퉁 맥주 캔을 들고 건배를 외친다. 가만, 우리가 이곳에 노래를 부르러 온 거야, 아님 술을 마시러 온 거야? 넌… 자러 왔니?

하여간에 갈 데가 더럽게 없는 도시인들이다 보니 오죽하면 노래방에서 프로포즈를 하기도 한다. 한 때 개나 소나 불러제꼈던 임재범의 “고해”를 지나 요즘은 이적의 “다행이다”가 인기라지. 근데 뭐 아무나 부른다고 그 노래들이 다 매력적일 수 있을까. 아무리 진심보다 중요한 게 없다고 한들 고음불가 인생들이 그 노래를 핏줄이 터져라 부른다고 생각해보자. 정말 듣고 싶은 거야? 난 듣기 싫은데……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노래방과 관련된 추억 하나쯤은 있을 것 같다. 나 역시 잊지 못할 추억이 있다. 특별히 좋아하던 노래도 아니었는데 그때 나의 상황과 기가 막힐 정도로 딱 들어맞는 노래 가사 때문에 지금도 우연히 그 노래가 들려오면 그 때의 일들이, 느낌들이… 생생하게 떠오른다.

대학 때, 좋아하던 선배가 하나 있었다. 과 동기 중 가장 친했던 애가 먼저 좋아한다고 선언을 하는 바람에 대놓고 말 한마디 할 수 없었던 나. 나는 그 사람을 그저 멀리서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. 그 때 들었던 노래가 김형중의 “그랬나봐”였다. – 말 하지 못한 막막함을 너는 알고 있을까. 오랫동안 기다려온 사람 내 앞에 숨 쉬고 있는 걸 – 모처럼 선배들 몇 명과 술을 마시던 날. 우리는 2차로 노래방엘 갔다. 한참을 기다리고 드디어 내가 노래를 할 차례. 나는 이 노래를 불렀다. 그 사람은 전혀 눈치챌 수 없었겠지만 내 마음은, 내 가슴은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고 있었고 노래 한 마디 가사 하나 하나에 내 진심이 넘칠만큼 담겨있었다. 직접 전할 수 없는 마음을 노래로나마 전하고 싶었던 어린 나의 순정이, 그 때의 안타까움과 절실함이 지금까지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. 이리저리 오가기만 해도 옷깃이 스칠 것 같았던 작은 방이었지만 그 사람과 내 거리는 왜 그리도 멀어 보였는지. – 널 보고 싶다고, 잘할 수 있다고. 용기내 전활 걸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 돼. -

술에 취했던 건지, 감정에 취했던 건지 어질어질 세상이 둘로 보였던 그 날 밤, 나는 건너 편에 앉아있던 선배만 뚫어지게 쳐다 보고 있었다. 어두운 조명 아래 숨겨진 내 맘을 그 사람은 보지 못했겠지만 그래서 더 좋았던 것 같다. 그 공간이 아니었다면 나는 고개도 들지 못했을 테니까. 뿌연 담배 연기 사이로 얼핏 선배와 눈이라도 마주칠 때면 나는 서둘러 노래책을 살펴보곤 했다. 들어본 노래만 해도 수백곡이고 가슴에 사무치는 가사만 해도 셀 수 없는데 막상 부르려고 들면 고를 게 없었던 그 너덜너덜한 책자를 꽉 움켜쥐고 어리버리 하던 내 모습이 얼마나 바보 같았을지… 지금 생각하면 손발이 오그라들다 못해 비틀어질 것만 같지만 그래도 그 때의 순수한 감정만은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. – 넌 언제나 나를 꿈꾸게 하지. 지금보다 더 좋은 사람 되고 싶다고 -

요즘 노래방은 화려하다. 인테리어만 해도 여느 카페 못지 않고 그 유명한 홍대의 럭셔리 수는 화장실 변기마다 비데도 깔려있더라. 하지만 그러면 뭘하나. 회사 회식 날 가는 노래방은, 김과장의 지랄맞은 목소리는 참을 수 없을 만큼 짜증이 밀려오는데. 실컷 노래를 부르고도 시간이 모자라서 1분이 남았을 때 새 노래를 예약했던 우리들이었지만 그래도 어릴 때가 더욱 즐거웠던 것 같다. 싸구려 미러볼이 돌아가는 답답한 작은 방. 그 안에서 우리는 사랑을 꿈꾸고,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았다. 그리고 그 시간들이 지금보다 훨씬 아름다웠다. – 널 만나러 가는 이 시간 난 연습해. 그토록 오랜 시간 가슴 속에 숨겨왔던 말… 사랑해 -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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